"할아버지가 억지로 인정해 준 재주, 완전히 무시해 버리기가 어색해서 인정해 준 그 재주가 내 생각에는 결국 하나의 우연에 지나지 않으며, 이 우연으로는 나의 존재라는 또 하나의 우연이 정당화될 없다고 여겼다. " (p177)
"할아버지가 보증해 준 것으로 믿었던 그 재주가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는 싫었다. 나는 그것이 하나의 사명이라고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를 밀어주는 사람도, 나를 진실로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어서 그런 사명을 나 스스로 꾸며 냈다는 것을 잊을 수 없었다." (p184)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명'이니, '필연'이니 하는 것들...
우연적 존재로 태어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로움에서 비롯되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운명'과 '필연'이라는 말을 지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점집에 가는 사람의 심정처럼, 앞이 뿌옇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그 안개가 운명과 필연의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덜 불안할테니.
사명으로 느끼는 직업이나 일만이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나의 어린 시절을 운명처럼 체념한다거나 자꾸 되새기는 것 또한 지금의 내가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나를 억압하고 한계 짓는 일인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분리되어 자유롭게 날아도 되는데, 그걸 안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핑곗거리와 변명으로 내 어린시절을 '운명' 따위라는 말로 부르고 있는 거지.
사르트르는 만인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엔 그 생각을 거듭한 끝에 오직 쓰기 위해서 글을 썼다고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스스로 자신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을 다 했다. 마치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내가 태어날 리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리도. 단지 끊임없이 나를 알아가고 나를 위해 글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뿐.
장폴 사르트르의 촘촘한 생각, 그가 언급한 무수한 작가와 작품들을 다 이해하면서 이 작품을 꼼꼼하게 읽으려면 내가 좀 더 독서 내공을 쌓은 후에 다시 이 책을 펼쳐봐야겠다. ㅎㅎ 그땐 더 넓고 깊게 반짝거리며 그를 느껴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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