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에 우연히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Ted talk 강연을 봤었다. 머머리일 뿐 키도 크고 훤칠하고 말도 재미있게 잘하는 그의 모습에 이끌려 그의 책을 여러 권 사모았더랬다. 말재간이 좋은 그 답게 그의 책 역시 유려한 문장, 뭘 이런 것까지 하는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또 그래서 이 사람이 직접 고른 단어와 수사법은 무엇일까 궁금해서 원서도 사모으기도 했었다. 알랭 드 보통... 아무튼 그렇게 그는 나의 차린 것 없던 독서 식탁에 몇 가지 찬을 들이밀어줬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연결되는 무수한 레퍼런스에 깜짝깜짝 놀란다. 역시 작가는 작가군. 철학가는 철학가야. 수많은 인명과 작품, 그것이 오로지 책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섹션을 넘나드는 그의 방대한 지식에 놀랬었다. 그중에도 알랭 드 보통이 한때 꽂혔었는지, 유독 많이 예를 들었던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이 바로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라는 작품이었다. 난 보바리라는 이름을 처음 듣고 Burberry가 그건가. 그땐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명품을 좋아하는 사치스러운 부인의 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추측을, 하지만 그땐 뭐가 웃기는지 모르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책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 마담 보바리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고 마음속에 저장을 해뒀었다.
그리고 작년 말 올해 초에 걸쳐 <Madame Bovary>를 다 읽었다. 글쎄, 가만 생각해보니 명품을 좋아하는 사치스러운 여자이야기인가?라고 그려봤던 그때 내 추측이, 실제 마담 보바리 이야기의 큰 방향과는 전혀 다르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명품에 빠진 사람들이든, 보바리 부인이든 그들이 가진 것,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을 증명해보고자 하는, 과시할 수 있는 새로운, 좋아 보이는 것을 찾아 계속 헤매고 기다린다는 게 근본적으로 비슷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역자 후기에 보면 '우리 모두가 보바리 부인이었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나 역시 그 생각에 밑줄을 그으며 공감했다. 나도 현실이 답답할 때, 난 뭔가 잘난 사람인데 여건이 안 받쳐주는 안타까운 인물로 연민할 때, 막연하게 새로운 어디론가 다른 나라로 가면 일이 잘 풀리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었기 때문에. 하지만 난 현재 얼마나 충분한지, 그리고 이게 얼마나 내가 알고 있는 완전한 내 모습인지 예전보다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점점 현재에 만족하고 살자는 주의가 된 건진 모르겠지만.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세상 돌아가는 걸 금세 배운 보바리, 그녀의 욕심, 욕망, 불만족, 꿈이 그 나이 때는 당연히 겪을 수 있는 혼란스러움이 아닌가 이해도 간다. 다만 끝을 모르고 벼랑 끝까지 질주한 그녀의 욕망은, 어떻게 생각을 돌려보려는 노력도 끼어들 새 없이 너무 빠르고 너무 급했다. 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보바리도 보바리였고, 그녀와 불륜을 저지른 남자놈들도 놈들이었지만, 벼랑의 끝에 서 있던 보바리를 거의 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뢰르의 얍삽함과 비열함에 분노했다. 이 놈의 장사꾼은 돈만 계산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피를 말리는 셈법을 했던 놈이 아닌가. 항상 남의 불행과 남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이용하는 이런 놈들이 해충처럼 늘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는 법이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속물 근성이 있겠지. 나는 최소한 내가 속물이 되는 순간 스스로를 알아차리기를 바란다. '방금 나 되게 별로였다. 나 방금 남들 눈치 엄청 살펴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무시했다. 평소 내가 믿는 내 가치를 방금 스스로 뭉갰다.' 그냥 이렇게 순간순간 깨달으면서 난 내가 항상 떳떳했으면 좋겠고, 망상만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활용해서 내 꿈을 키워나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드디어 마담 보바리를 읽었네. 기분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MtSE4rglx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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